상처의 정리





곰곰히 생각해본다.
내가 어려서부터 받아온 상처들중에
내안에 큰 흔적으로 남은것들이 무엇이었었는지.
이 정리를 해놓을 생각을 해왔다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이런것도 시간의 흐름속에서 문득 떠오르거나 정리의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뭐였을까 했는데

내면에 상처를 가지고만 있었지 그걸 자각하지 못한것들이
몇개 있는 것 같고 그 상처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이었는가
부분은 더더욱이 몰랐어서 그런 저런 상처들이 겹겹이 쌓여
타인의 조그만 말들과 행동이었을지 모르는것들에도 민감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보내온게 이제와서야 안타깝다고 하면 시간만 
아까운일이 될테고. 나는 또 자책을 하게 되겠지.

그러나 써야겠다. 

나의 상처는 중고등때 크게 크게 주름지어져 온 것같다.
그렇지만 어려서 큰 기억 두가지는.


어느날 햇빛이 찢어지게 드는 날 오후 , 
나는 국민학교3학년 이었고 집에아무도 없는데 
얼마나 할일이 없고 심심한지 그 빛이 드는 작은 방에서
창호지로 투과되어오는 빛과 함께 구석에 앉아있던,
소음마저도 너무 없어 귀를 때리는 미약한 이명소리만
삐하고 울려대던 그날을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한다.
왜 혼자였을까. 왜 엄마는 정말 내곁에 있어줬으면 했을때
항상 없었을까. 이 날 그 어떤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빛이 나에게 큰 자국을 남긴건 분명하다.
외로움의 세포가 온몸에 퍼진날 아닐까.


오빠와 같이 사촌언니네서 겨울방학을 보내게 되었던
5학년때, 고집을 피워 핀잔을 듣고 그러고서 바로 모두가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나가는데 안간다고 하니 정말로 나만두고
모두가 나가버려서 그날의 충격도 좀 컸던 것 같다. 
어둡디 어두웠던 그 날 오후를 아직도 기억한다.
마음속에서 오빠가 깊게 미워진 날이었다.
나는 그날 버림받았다. 나의 내면에서, 그리고 그들에게서도.




HOT에 미쳐살던 중학시절 내방에 붙어져 있던 이재원의 브로마이드.
가장 좋아하는 사진컷이었고, 가장 잘보이는곳에 붙여두었던.
나의 탈출구 같았던 사람들. 그사람들의 노래 춤 모든것이
나의 위로였는데. 어느날 내가 무슨잘못을 했는지 정확치는 않지만
오빠와 타툼이 있고나서 엄마가 그길로 오빠를 데리고 내방에 들어와
그 브로마이드를 오빠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찢어버린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벌렁거려서 수습이 안된다.
가슴속 심연에 오빠와 엄마의 이름이 아닌 저사람들은 내 적이야
내 가족이 아니야 엄마 아니야 오빠 아니야 이런 생각의 도화선에
불을 지핀날이 바로 이날. 찢은게 문제가 아니고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이 나를 처단하는 느낌이 지배적이어서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그날 찢어진건 이재원의 브로마이드였지만 정작 갈기갈기 찢어진건
내 어린 마음과 내면이었다. 쓰면서 생각하니 여전히 고통스러운 날.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은송이와 두번째 같은반이 되고
우리는 미스코리아보다 더 예쁜 교생선생님을 맞았다.
그녀는 그저 아름다웠고 아름다웠으며, 아름다웠다.
거의 하루를 같이 하는 은송이에게 일이 생긴건 교생선생님이
우리반에 오고 얼마 지나서. 송이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어떤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고. 그사람은 다름아닌 교생선생님의
남동생이라고. 그사람과 사귀게 되고 우리는 곧 수학여행을 떠났으며
그날 아침에 만나러가는 길까지 동행해주었고 그사람관련해서 모든
비밀들과 과정을 함구해준 나.  사건이 터진건 남친이 된 교생선생님의
남친과 오토바이를 타고 솔재를 넘나들다 마침 차타고 지나던 엄마눈에
띄어 부랴부랴 전화와서 너희엄마와 서로봤으니 어쩌면 좋겠냐는 말에
우선 알겠다고 하고 널 연막쳐 주었던 일. 은송이야 지금와서 생각하면
내가 너 관련해서 그 어떤 이야기도 그 누구에게도 발설치 않은걸
나는 나 나름대로 내 내면의 자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좀 웃기지
누가 지켜달라고 한것도 아닌데 괜히 혼자서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다 내가
좋아서 그런걸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 너는 그냥 언제나 너일뿐이었고
나랑 여정이는 너가 새친구가 생기기 전까진 그냐 옆에 있을 뿐이었잖아.
우린 어렸고 언제든 변하는 상황앞에서 서로에게 얼마든지 상처줄수 있는
말그대로의 사람이었으니. 그래도 그사람하고 키스한것까지 이야기했을땐
중학교 2학년 멘탈로 감당키 힘들었단걸 지금에서야 고백해본다.
그땐 너가 친구로써 너무 좋아서 네가 예쁜얼굴을 한 전형적이 썅년인걸
전혀 몰랐었는데 그런 병신력또한 나의 잘못이다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랑 친구였던게 후회가되냐 그러면 그것도 아니라서 참 노 답.
널보며 참 언제나 신기했어. 누구하나 널 싫어하는 애도 없었고 공부도
적당히 잘하고 집도 잘살고 얼굴도 예쁘지 그러니까 남자들도 다 너좋다고 하고
너같은 애도 있구나 싶었지. 교생선생님 남동생이 교사수첩에 붙어있는
우리반 48명아이들중에 널 보고 너네집으로 전화해서 너랑 사귀게 된걸 보면
너가 얼마나 예쁜아이인지 두말하면 입아픈거겠지. 그래서 더 네가 부러웠다.
너랑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지금에서야 알겠어. 너랑 같이 한 내내 널 부러워
했지만 가슴속 깊은곳에선 나도 너처럼 될수있고 그러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다는걸. 은근히 상하관계가 되어 지내온것도 그렇고 하지만 넌
그런 상황도 유연하게 넘길만큼 예쁜만큼, 힘도 있는 아이였지.
널 보며 많은 자괴와 박탈감을 배운 것 같다. 넌 친구로써 중학교3년내내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언제나 짝사랑에 실패하고 아침마다 너희집으로 가서
같이 등교하고, 하교하고. 밥같이 먹고 공부같이하고. 어땠어 ? 궁금해.
고등학교 되기전에 너와의 마지막 통화가 나의 내면에 큰 상처를 낸걸
모르겠지. 같이 학교에 다녀도 그게 마지막이란걸 너도 그리고 나도 
알았던 그 통화. 지금생각해보면 있잖아 도서관 정문 앞 공중전화에서
너한테 전화를 걸었을때 그때한참이던 오방빵을 사준다고 해도 너가
나오지 않는다고 할걸 이미 난 알고 전화를 했어 너가 나오지 않을 거란걸
알고 있었는데, 그냥 전화했어. 왜그랬나 싶은데 지금생각해보면
그날 너무 갈데가 없고 외로웠고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아.
갈데라곤 집밖에 없는데 집은 길에서서성이는 것보다 못한때라서
어디라도 가야했고 누구라도 만나야했는데 그때 나한텐 너밖에 없었어
여정이보다 비교적 외출 자유로웠던 너였는데 그냥 안나온다고 대답한
너를 내가 알아서 으레 집에서 못나가게 하나보다 하고 말았지.
그날의 너의 그 한번의 거절이 얼마나 컸는지 그 이후 다 커서도 받은
이런저런 거절들이 나에겐 별로 크지 않았다. 어떤 형태의 거절의 끝에서도
너의 그날이 종종 생각날때가 있었어. 그랬었다고. 

대학때 싸이에서 다시 만난 너는 방명록을 통해 적당히 그리고 
다신 만날일 없을 머나먼 이국땅에 있는 별로 안친한 친구 대하듯
했었지. 그때도 이런 것들을 전혀 몰랐었는데. 시간이 지난다는건
역시 무서운 일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절대 그게 아니라는걸
나는 알아가고 있거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널 정말 많이 좋아했어.
친구라는 존재로 사람대 사람으로 내가 태어나 만난 사람중에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가장 정직한 눈으로 본 사람중에 
너가 가장 내가 잘 평가하고 좋아하며 부러워했던 사람이
너였거든. 아무런 계산없이 그냥 사람하나만 좋아했던 사람이
유일하게 너야. 물론 나이가 어렸으니 가능했던 일일테지만
어쨌뜬 너다. 은송이 너.

너의 안좋은면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여기 이 글에서도
그런부분을 적고싶지 않은걸보면 널 얼마나 내가 높이샀는지
쓰다보니 나의 이 태도에 내가 더 편승하는 것 같은데
아니 안그래 그때의 내 마음은 진짜, 레알이었거든.



이민정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천하에 없는 썅년이란 타이틀이 아깝지 않을정도에 그래서 에피가 
너무 넘쳐나서 쓰고싶지도 않지만 강도의 강약을 떠나서 나를 가장
빡치고 황당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내가 그여자에게 이것밖에 였던가
싶어서 아직도 할말을 잃게 만들었던 사건. 둘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우리둘 사이 말고는 나가는일이 없는 사이였는데. 그렇게 믿은것도
바보같은 일인지 모르지만 믿고 한 이야기, 그것도 그냥 타인에 대해
추측한 이야기 그보다 더한이야기도 더 많이 하고 지내온 어린 20대초반
여자둘이 그저 한 이야기 왜 그이야기를 당사자에게 전했을까
왜 전해서 그 이빨좀 턴다는 애가 열이 받다 받다 못해 오죽하면 
전화나 말도 아니고 문자로 꾹꾹 눌러담은 한통으로 날 압박했나
더 황당한건 내가 확인차 전화해서 물으니 당당함 어디로 가고 
전에 없던 미안함으로 점철된 목소리 거기에서 한방 먹었구나 
알았어야 했는데 그때도 난 거기서 멈추지 못했지. 아마 당신은
그걸 알고 있었을거고. 이날도 나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날이 되었지.


결혼전 정리는 이정도로 해야겠다.
학교때의 상처도 상처인데 적으려고보니 위에 적힌것들보다
참을만 했던 것 같아서 생략.

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오늘 정리한 것들이 큰것 같네.


심심할때 봐야겠다

보면서 괴롭긴하겠지만













현실적인 이야기





벌써 12년이 된 인연이 하나 있다. 재수 입시학원에서 만났고 
지금껏 잘 지내고 있는. 처음 몇년은 같은 여자끼리여서 흔히들 거치는
여자들의 과정을 거쳤다. 한 살 동생이고, 수능형 공부는 나보다 잘했고.
끊어질법한 인연이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그러지 않았다.
한명 더 있었는데 그애 하고 끊어졌고 우리 둘만 남았다.

꽤 오랜시간, 지나오면서 듬성 듬성 만나며 지내기도 몇년이고,
무엇보다 서로의 경제패턴이 맞지 않아서 더 그랬기도 했고.
그러나 그러면서 1년에 한두번씩은 꼭꼭 만나서 관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런 왠지 확인용 만남이 있어왔다. 이정도 즈음까지만 해도 얘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거나 하는 애는 아니었다. 대학 들어갈 즈음부터,
연차가 오래되고 해서 그때부터는 조금 남다른 의미가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시기나 질투가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는 그런사이.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둘을 이어주었던 매개는 둘다 동일한 빈곤함이라는
키워드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걔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애에게 동지애 같은걸 느꼈다. 연민과 안쓰러움이 있었다.
어쨌든 그러다가 사람의 상황은 언제나 달라지기 마련이라서 먼저
대학졸업한 그애가 유치원 선생님으로 자리잡기까지,6년 넘는 세월이 흐르고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대학에 들어갔고, 결혼했다.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한
그애는 이제 돈도 쓸줄 알게되고 여유로워지고 있었다. 없이 지냈던 시간이
긴데도 돈을 씀에 있어서 추접하거나 배포가 작지도 않았다.

난 당연히 좋았다. 

내가 주부인것만 제외하면 결혼후에 얘를 만나는게 안좋을 이유가 없었다.


단 한가지 흠결은 애가 약간 나에겐 되바라진 면이 은연중에 있어서
가끔 속으로 싸가지없는년이라고 욕학기가 몇번, 뭐 저정도 싸가지야
요새세상에 저것도 없으면 세상 못살지 하고 넘어가준것도 몇번
그렇게 이해하는 부분의 성격은 분명히 있는 아이였고 그런 꼬라지를
한번씩 부릴때마다 뭐라고 하기 뭣하게 애매하게 혼내기도 싸우기도 
뭣하게 애매하게 그런 스킬을 구사해서 만나고나면 다 좋은데  이부분의 
뒷맛이 좀 쓴, 그런 때가 있었다.  내가 계속 용서하고 동생이고 나도 
여유로워지고 해서 였을까 어느순간 이런게 눈녹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 안된 일이다. 3년전에 덕산에 물놀이 갔을때만해도 개 염병할 년이라고
속으로 몇번 욕했었다.  그래도 그때도 역시 나의 측근은 측근이었으니까.
소중한 사람. 


유치원 선생님하면서부터 사귄 남자친구가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처음에 그 소식을 들었을때, 우리동생이 얼굴이 곱긴 곱구나
했다. 이연희 뺨치게 이쁘게 생겨서 전부터 좋은 남친 생길거라 믿고 있었다.
얘네들의 사랑은 꽤나 오래갔고 지금도, ?

1박2일로 얘랑  북촌 게스트 하우스에서 잘 먹고 잘 자고 다음날 창덕궁 관람까지
잘 마치고 ktx기다리는 3시간여남짓동안 나 만나기 직전에 만난 남친이야기를,
묻지도 않았고 물어봐도 잘 대답도 안하던 남친이야기를 조심스럽게도 아니고 
넌지시 스윽 하고 꺼내는게 느껴졌다. 뭔가 할말이 있구나. 생각은 했는데
들은 이야기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나를 짐짓 당황케 했고, 내가 얘떄문에
이런기분과 감정과 소용돌이를 겪어야 함이 난해할지경이었다. 


없는여자가 자존감과 자신감을 세우며, 지키며 연애하기란 얼마나 힘든일인가 
깊은 고뇌와 공감이 있었다. 어디 비할바 없는 남친을 사귀면서 단 한번도
주도권을 잡아본적이 없던것이나 내내 자기가 모자란다는 인식을 주지하며
살아온 세월, 초반을 제외하고 큰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아오지도 못한점,
내눈에 띄게 보이는 외적으로 표출되는 안좋은 습관들이 같이 오버랩되면서
크나큰 폭풍우를 맞은듯한 기분이 몰려왔다. 
나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설명을 주고 받으며 결국엔 눈물을 보였고.
난 왜 우냐며 나무랐지만 그 잠깐의 눈물이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어느정도였나 알 수 있기도 했고.


이루말할 수 없는 착찹함이 거의 30분도 안되는 시간안에 나를 덮쳤다.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산거냐고, 두살 어린 놈한테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참아가 주면서 뭘 바란거냐고 
이런말을 하면서도 썩는 속이 말이 아니었고.
예고도 없이 연락을 끊은게 서너번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이런 시발 소리가 절로나와 이때부터 평정심 유지가 전혀 안되었다.


그놈도 그놈이지만 니가 정말로 잘못한 부분이 크다고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건 너라고 말해주면서도 한켠으로는 
나 역시 그래도 마지막 한번을 잘 추슬러서 결혼하면 좋지 뭐,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서로가 결혼이야기가 있어왔던 애들이고 
남자애가 영국유학 전후로 뭔가 변했다는 느낌만 주지 않았다면
상태가 그렇긴 해도 , 다음을 기약할 수는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동안 이래서, 나한테 지 남친이야기를 그렇게 함구했었나
싶기도 하고 난 걔랑 결혼해도 걔네 엄마 걔 전부 다 못이기고 
살거야 입버릇처럼 말하는것도 그랬고 이런 저런 힌트는 있어왔지만
설마 설마 했고 같이 한 세월이 얼만데 그래도 하는게 있었던것도 사실.

상상치도 못한 속쓰림과 상함이 몰려와서 큰 상심이 있었다.


기독교 신앙이 신실한애라 하느님도 무심하다 어떻게 널 그렇게 
마음고생을 시키냐 ? 했는데, 대답이 날 무너지게 했다.

언니, 아니야 도움많이 받았어 나 아니었으면 내 성격에 
벌써 자살했지.  라고 


눈은 눈물 가득차서 울려고 하는데 말은 천연덕스럽게 해서
아 시발 내가 얘때문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도 느끼네 싶어서
눈물 터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나 가는거 배웅하지말고 먼저 올라가라고 하고 열차 탔는데
조금있다 카톡으로 잘 내려가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너때문에 눈물터진다 라고 했더니 나도 눈물이 나네 하는 순간부터
저도 나도 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동대구 내려올때까지 간헐적으로 눈물이 터졌다.
티비에 나오는 불쌍한 사람보면 우는편이긴 하지만
이건 정말 새로운 기분이었다. 똑같이 불쌍하긴 한데 
약간 자의식도 들어가고 감정이입도 되고 나의 분신처럼
그런 기분이었다. 또다른 가난을 짊어진 내가 그런 실패를
맛본 기분이었던거 같기도 하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작은 좌절들이 쌓였을까
얼마나 그애를 기다렸을까 그러면서 결혼을 생각했을까
그걸 내려놓기까지 죽음을 생각하면서까지 이어왔던 관계를
정리하기까지 그 누구에게 마음을 붙일 수 있었을까
여러가지 괴로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또 동시에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사람이 과연 누군인가
생각한 계기도 되었고. 
이렇게라도 정리를 해본다.
안하면 머리가 더 아플 것 같아서.
무엇보다. 이번이을 계기로 한겹 더 단단해진 건 자명한 듯.
왠만하면 성격지랄이어도 받아주기로 마음먹음.


+) 얘 사주넣어보니 기사일주더라. 뭐 시발 이래





이유에 대하여







오래도록 고민해왔던, 그러나 답을 찾지 못했던,
내 인생을 가장 크게 가로지르는 담론.
하려고 해도 하지 못했고 할 수 없었으며 못하기도 했고
해도 그냥 저냥 그때그때 끝나버린 그이름, 살과 다이어트.

6월에 시작했고, 한달 남짓 되었다. 몸에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고
이렇게 오랜시간 쉬지 않고 운동한건 처음있는 일이다.
나는 운동해야겠다는 의식 없이 지낸시간이 너무 오래라서
해야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살았지 한번도 제대로 해본적이 없어서
뭐라 쓸 말은 별로 없다. 하지만 여기에 구지 적시하는 이유는
왜 , 이제와서야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걸 실행하게 되었는가
그 과정을 좀 남겨두고 싶어서이다.

실로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큰 사건과 자잘한 이유까지 한번 정리해 봐야겠다. 내가 왜 지금 이러고 있는지.



스무살 이후 상경해서 말 그대로의 잘못된 식습관과 잦은 군것질로 살이 점점
오르고 있었을때도 그로인한 핸디캡이라던지 시선 이런건 전혀 느끼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살이 쪘다는걸 객관적으로 알았던 건 오빠가 친구와 함께 나 살전 청파동집으로
뭔가를 전해주러 같이 왔을때 그 오빠의 친구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을
전해들었을때가, 타인에게 들은 첫 반응이었다. 나는, 잠깐 마음상하고 말았다.
이때가 스물 한살때이다.


엄마의 잔소리. 가 있었지.
엄마는 내가 살이 찌기 시작할때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나의 살과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습관을 13년을 하루같이 이야기하고 있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잔소리가 끔찍할정도로 인격모독적이고 그냥 듣고 있어도 영혼이 탈출할 것 같은
엄청난 화법구사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 '괴롭다'는 생각이 절로들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없다.
나는 그 말을 그토록 오래 듣지 않아왔다. 엄마가 포악스러워지지 않는게
이상할 지경이긴 한 것 같다. 지금도 엄마가 이야기하면 좀.. 싫고 그런 반복적
잔소리 패턴과 분위기가 날 더 무뎌지게 단련하긴하지만. 그리고 여태껏 그래왔지만,
지금은 그런생각보다 엄마가 그 오랜시간 나에게 그런말들을 전하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얼마나 나쁜 딸이었나. 인정하게되는 황당한 상황이 되기도.

나에게 큰소리한번을 못치는 아빠는 1년에 한두번 조심스럽게 몸을 빼라,
문자만 보내올 따름이었다.



대학 2학년때, 도서관에서 어떤 쪽지를 받았는데, 내용이 하도 엄청나서
여기에 차마 쓰지는 못하겠고 어쨌든 나의 생김새 비난조의 쪽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마음은 상했지만 그런 자극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던듯.
아니면 그몸대로 살만했던지 둘 중 하나였던가 둘다였던가 했던 것 같다.


그즈음해서 준이가 지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에게 털어놓았고 그 심각하지
않았던 가벼웠던 고백이 나의 배알을 꼴리게 했음을 인정한다. 그때도 잠깐
그런생각을 하긴 했는데, 내가 왜 이런기분을 느껴야 하는가, 에 대해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뭐하러 , 그래야 했는지 결론 귀결은 한가지이다.


사람을 좋아함에 있어서 여러 반복적 실패가 있어왔고,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습성과 맞물려 나에게 몇안남은 인간관계가 남았고, 점점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대한 믿음도 점점더 롤러코스터를 탔던 것 같다.

좋아했고 결혼했다.

난관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이곳의 매카시즘은 거의 모든것이 남의 살과 나의 살의 비교와 남의 돈과나의 돈의 비교로 시작해
끝이 나는 형식이었다. 나의 머리와 사고로 납득할 수가 없는 일이었는데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그런것의 면면들을 봐왔고 겪어왔으며 서로가 알지못하는 너무 흔해 빠져
느낄수 없는 이런저런 인격모독의 파편들을 수도없이 맞아왔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봐왔다. 어떨땐 돈보다 옆집여자 살이 얼마나 올랐는지가 인생 최대의 화젯거리가 되는
이곳의 풍토를 볼때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정말 큰 고뇌가 있었다.

그 와중에 나의 몸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는데,
살이 쪄도 괜찮던 건강도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스트레스 증가, 그에따른 말초성 현훈의 재발,
무릎이 살짝식 아파오는것, 잘 뛰지 못하겠는 것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남편의 살도 같이 오르고 있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심각성이 만연해 있었고
나는 알면서도 그랬는지 어쨌는지 변하지않는 남편의 사랑때문이었는지
그렇게 점점 곱게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예쁜 사람보고 예쁘다고 하고 잘생긴 사람더러 잘생겼다고 하고
보기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고 좋아보인다 부러워하기 일쑤였고
남과 나를 비교하기 일쑤였으며 여성적매력이 바닥을 치고 있구나
알때즈음 이미 이 많은살들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해, 하고 자인했다.
이걸 빼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절대 될 일이 아니라고
내가 이살을 빼면  차라리 그 의지로 생을 마감하겠다. 생각한적도 여러번이다.


허리가 엄청 커졌고 손에 오른 두툼한 살들이 가끔 내 눈을 공격해오면
우울해지기 십상이었다. 다른곳보다 특히 손가락의 살들은, 정말이지
빠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이 힘들었는데 이마음 제대로 알아줄 이 하나
없었다. 정말 외로웠고 괴로웠고 인생이 왜 혼자인가 알고 알고 또 알게된
시간들이 지났다. 이 상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대로 살아서도 안될 것 같았고 작년 5월에 그 엄청난 일을 겪고도 
다시 5월이 되었을때 나의 몸이 그대로인걸 느꼈을때, 거실의 하얀커텐이
그때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시간은 1년이 지났다.

마음이 짓이겨지는게 느껴졌다.


더이상 버틸 수 없는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그 시점에서 큰 선택을 해야함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큰 선택들 중 한가지를 무조건 해야하는 상황이 온걸,
며칠간에 거쳐 느낄수 있었다. 폭풍전야 같은 며칠이었다.


6월에 스콰트와 걷기를 겸하며 운동을 시작했고 과자와 군것질을 끊고
배달음식을 끊었다. 되도록이면 집에서 식사를 했고 좀 빨리 먹는 듯 해도
천천히 먹으려고 애썼으며, 고기를 먹고 싶으면 살코기 부위만 먹었다.
밥의 양을 줄였고 배고프면 많이 먹었지만 100프로 현미로 대체했다.

밤엔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운동했고, 무릎 근육이 타들어갈 것 처럼 
스콰트와 걷기를 반복했다. 




 7/14 마무리

복싱을 배우고 있고 선생님 앞에 가만히 자세잡고 서있기만해도
땀이 줄줄 나고 있다. 살이 쪄도 땀이 흐르거나 하는 체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부분이 조금 슬프다. 

8키로 감량 성공.
지난한주가 정말 지옥같았다.

기분이 들쑥 날쑥
그와 동시에 밥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
거의 아무것도 못먹고 과일만 먹으며 지냈다.
그래서 더 빠진 듯.

조용히. 이 다짐 이대로 쭉 전진 할 수 있길.








건망증 누락된진심





집에서 막 나서 신발을 신으려는 순간, 발밑에 뭔가 밟힌게 느껴졌다.
그것의 느낌은 부드러웠으며 약간 사각진것이었다.
이게 뭐지 ? 싶어서 발을 들어보니 왠 안경알 ? 뭔가 불길한 느낌이 번뜩 들어서
2주전에 새로한 내 안경이 어디 있나 봤는데 티비옆 장식장 위에 놓여져있었다.
이쁘게 놓여져 있었는데 알 하나만 없었다. 뭔가 수십만가지의 생각이 몰려왔고
마지막으로 썼다가 그 자리에 놓아둔것을 기억했다. 안경알이 왜 빠졌을까 .


나는 고민할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 어째서 ?


9900원짜리 판넬명화여섯점이 티비 벽면 몰딩에 붙어 있었다.
3m의 강력접착제로 그것들을 몰딩에 고정시켰지만 걔네들은
이벽 저벽을 전전하며 붙어있는동안 집에 꽤나 많은 생체기를 내며
모서리 등이 망가져갔다. 실크벽지에 붙어있는동안에는 별로 크지도 않은게
우당탕 큰소리내면서 수차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소 경기일으키듯
깜짝 깜짝 놀라긴 했는데 나의 근성이 그것들을 포기할리 만무했고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테이프를 덧대고 덧대 고정 또 고정시켜왔다.
나는 내가 고정한 횟수만큼의 낙하를 경험했고 어느순간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몰딩벽에 걔네들을 옮겼다. 예상은 적중해서 잘 붙어있을줄
알았던 나를 무색케 하듯 그곳에서마저 떨어지던 걔들은 다시 나와
붙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다.



안경알은 걔가 떨어지면서 안경테를 치고 알만 푱 하고 날라간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수가. 내 안경은 정말 그대로 였는데.



오전에 정리해야할 내용의 어떤 부분의 이야기가 분명히 머리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녔다.
정리할 것 이라 생각했고 밥을먹고 운동을 했으며 샤워를 하고 안경일을 겪고
카페에 왔는데 그 일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정말 까맣게 뭐에 대해서 정리하고 했던건지
조금도 기억이 안 난다.


기억력 향상 훈련이라도 해야겠다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이드는 것도 서럽고 싫어 죽겠는데 이런것까지 부차적으로 따라올 필요가 있나
싶어서 짜증.... 전엔 이렇게 잊어버리고 생각이 안나면 순간 치부하고 끝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제 나이와 결부되어 우울함을 좀 배가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그런것이 또
반복이 되다보니 약간 문제적 상황이 된걸 느낀다.


이렇게까지라니.



고등학교 졸업식이 엊그제같은 생생함을 간직한 뇌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뇌가 어떻게 이런걸 기억을 못할까 ?


정말 이럴수가.






닥터이방인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면 오수현 이야기라고 해야 맞겠지만.
이번주 월화 방송에서 언뜻보면 오수현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
여러컷 나왔었다. 하지만 화요일 방송에서 말해봐 너 나한테 왜그랬어.
라고 말하는 장면과 왜 나한테 말 안했냐고 다그치는 등의 장면들은
그녀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오수현이 지속적으로 훈이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훈이는 그냥 표면적이었을 뿐이다. 과연 그럴까 ?

재희가 재희인걸 알게된날 너무기뻐서 우리 돌팔이 심장소리맞춰보자며 안아볼까
하면서 했던 첫 포옹이나, 무시로 행해지는 훈이의 스킨십,머리카락씬,
정작 자신은 알려달라고도 안했는데 의도치 않게 여러 의학적지식을 훈에게
배우게 된 과정 등. 그녀는 그럴때마다 훈이에게 돌진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본인이 모르고있었고, 서서히 알기시작할때부터는 그를 사랑하게 되는
마음의 진행과정을 외면 외면 해왔었다. 이게 진심인걸 본인이 알았을땐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오수현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있는 것 같던데
뭐가 과한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녀의 사랑자체는 정말 극 초반부터
다른곁가지들과는 다르게 아주 정상적인 형태로 차근차근 진행되어졌다고 보는데.
아예 수현이의 존재나 그녀와의 럽라인 자체가 통으로 빠져도 극의 흐름에
전혀 무리가 안가니까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 구지 존재하는 그녀의 잘 진행된
짝사랑 가지고 말들 많은 것 같더군.

그녀는 훈이를 계속 사랑해왔다. 혼자서 철저히 너무너무 애절하게.

가진것도 많으면서 훈이까지 못가져서 징징대는게 아니라

그런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걸 말하는 거니까.


많이 나간건 승희가 재희인걸 알게되는 가리봉에서의 지저분한 과정이지.
수현이의 그 사랑이 아니고.


그녀의 오해가 훈이도 젠장하게 만들었다. 화요일에 훈이가 두번이나 젠장이라고 했다.
(훈이는 말하기전엔 몰랐다는게 함정)
수현이의 감정이 어떤건지 알아서겠지. 훈이는 수현에게 할이야기 있다고 해놓고 정작 못한 것 같은데
작가는 양아치 환자한테 싸대기 맞고 얼굴부은 수현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고 했을까 


훈이가 사랑놀음에 너무 놀아나고 소모되고 있긴 한 것 같다.
할일이 엄청 많은 것 같은 , 해결해야 할 일 역시 산더미같은 느낌인데
아무것도 못하고 이리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네번밖에 안남았는데 무기력하게 몇회가 지나가버렸다.

오수현에게 감정이입해서 죽을뻔 했네.
그녀는 이미 박훈이 찢어진 청바지에 롱가디건 걸치고 명우대병원에 오게되었을때부터
사랑했는지도. 그때부터 그녀는 훈이와 부딪히며 그때마다 그를 사랑 사랑 사랑
도장찍고 수도없는 화살을 맞아왔다. 훈이의 처참한 내면과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리고 이 드라마의 네 주인공 모두 엄청난  불쌍갑옷을 입고 있기때문에
누가누가 더 불쌍하나 비교해봤자 무소용이지만  그리고 오수현 러브라인 불필요하다고
느끼긴 하지만, 기왕 이렇게된거 어쩌겠나 싶은생각이다.

훈이는 ....걘그냥 빼고...-_-




오수현 안타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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